참진주 참음식 페스티벌’ 성료 -경남일보-

 

음식 전문가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저마다 대장금이요, 저마다 원로를 자청하고 나서는 통에 꽤나 혼란스럽다. 맛을 그리는 능력은커녕 손맛 내는 별 재주 없이도 적당히 모방해 무작정 전통만 표방하고 나서면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대표주자가 되는 모양이다. 하긴, 이 나라 어느 행정기관에서 이를 검증해 진위를 판정하리요. 때론 로비전쟁에 얽혀 진짜가 가짜가 되기도, 가짜가 진짜가 되기도 하는 딱한 현실이거늘.

그런 의미에서 박 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46세)의 출현은 신선하고 반갑다. 제대로 된 중견을 만난 듯해 뿌듯한 기대도 든다. 전통과 더불어 내추럴리즘으로 디자인되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분석해본다.>

논개를 무색케 한, 국산 유기농 진주비빔밥

지난 5월 말, 논개축제가 열렸던 경남 진주는 북적였다. 400여 년 전, 왜장의 목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가 현신하던 그날. 진주성을 찾은 인파들에게 가장 각광을 받은 것은 주논개(朱論介)가 무색하리만큼 인기를 끈 진주비빔밥이었다.

애당초 진주비빔밥이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가 남긴 유산이고 보면, 논개와 진주비빔밥의 함수관계가 전혀 근거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상 제공된 5천 명 분의 진주비빔밥은 논개로 상징되는 진주의 이미지를 뛰어 넘어, 큰고을 진주의 옛 명성을 되찾기에 충분했다. 객을 귀히 대접하던 선비골의 양반근성과, 시대를 풍미했던 진주기생이 남긴 교방문화도 고스란히 담겼다.

그 많은 분량의 재료를 정성 들여 구하고, 다듬고, 조리하고, 담아낸 주인공은 한국음식문화재단 박 미영 이사장이었다.

일곱가지 보석처럼 아름다운 칠보화반 「진주꽃밥」

“일곱가지 보석처럼 아름답다” 하여 칠보화반(七寶花飯)이라 불리는 진주비빔밥의 진면목을 자랑했던 그녀의 꽃밥에는 최상급 국내산 유기농 재료들이 엄선 사용되었다.

연한 부분을 선별해 다듬은 고사리, 가지, 애호박 등을 비롯해 햇무는 쓴맛이 난다 하여 특별히 제주도에서 단맛 나는 묵은 무를 대량 공수해왔다. 해조류인 속대기와 배추, 진주비빔밥의 트레이드 마크인 숙주나물과 더워진 날씨를 감안해 육회대신 얹은 1등급 국산 쇠고기볶음도 일류였다. 태양초 약고추장을 얹고 삼천포 청정 섬에서 직접 공수해온 조개로 끓인 보탕국까지 곁들여졌다.

애로사항도 만만치 않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재료를 만지고 다듬다보니 저마다의 의견과 경험들이 분분해 올바른 레시피를 지시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또한 ‘많은 양을 만들 때는 마구잡이 식재료나 값싼 수입품 양념을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일도 수월치 않았다.

이렇게 만든 진주비빔밥은 직접 디자인해 제작한 꽃모양 방짜유기에 담겼다. “꽃밥”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꽃잎처럼 웨이브를 준 유기(鍮器)는 경남 무형문화재 14호인 거창 “두부자 공방”을 찾아가 노트에 스케치한대로 주문한 창작품.

이쯤 되면 재능이니 장인정신 등등을 차치하고 예술적 “끼”도 확인된다.

자연 그대로를 디자인해‘천상의 맛과 멋’창조

동반행사로 개최된 ‘한국음식 열 두 마당’에서, 박 미영 씨가 선보인 음식들에 대해서는 굳이 ‘창작’ 아닌 ‘창조’라는 말을 쓰고 싶다. 마치 오랫동안 잠자던 감각신경 하나를 탁 치고 지나가듯 새롭다. 작품 하나하나 ‘약선’에서 일보 진전한, ‘명품 약선’이라 함이 옳다. 재료 간 궁합, 체질별 건강, 식재료가 지닌 고유의 성분은 물론 양념 하나까지 질감과 영양 모두를 감안해 조합하고 배열해냈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가감(加減)되고 승제(乘除)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자로 잰 듯한 전통’이 아닌 ‘전통이 자연의 모습으로 디자인’되는 작품세계는 실로 경탄스럽다. 그녀의 생각과 손끝에서 전통은 이미 답습만을 명제로 하는 구태의연에서 벗어나 스스로 휘어지는(自然) 힘으로 재창조된다. 어떠한 혼돈의 무질서도 그녀의 공식에 의해 재배치돼 새로운 질서를 찾을 듯한 느낌이다.

또 하나의 인프라, 교방문화(敎坊文化)

진주땅에 견고히 자리매김 된 교방문화 또한 엄청난 음식 인프라 역할을 한다. 박미영 씨의 작품들이 전국적으로 널리 모방되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탯자리인 진주, 과거 풍류와 낭만의 절정을 이루었던 권번의 교방문화를 타지인이 어설프게 모방해본댔자 한낱 짝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임에 우려스럽다.

일례로, 수삼 속 찹쌀에 핑크빛 오미자물을 들여 화룡점청(畵龍點睛)인 양 금분(金粉)을 찍었으니 그 화려함과 향기를 뭐라 표현하랴. 형태와 색채가 주는 미술적 요소만으로도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겹겹이 김치’며 푸드 스타일링이 단연 돋보이는 ‘약선 도다리’ 등등 여간의 공감각적 섬세함이 아닌데.

참 진주 명품음식 개발

여담이긴 하나, 외조덕(?)도 단단히 본다. 자타가 공인하는 남편 이성수 박사(안과 전문의)의 외조는 박이사장의 표현 그대로 차고 넘친다. 남편의 수련의 시절, 아이를 등에 업고 콩국수 10인분을 장만해 머리에 이고 병원을 찾곤 했던 아내. 아이들에게 햄까지 만들어 먹이는 억척 엄마이기도 한 아내. 최고의 후원자인 이성수 씨는 그 아내의 남편답게 음식이라는 주제에 매료되어 전국의 장날 일자를 훤히 꿰고 있을 정도다.

곧 재단의 신념인 오정삼미(五正三味) 의 음식철학을 토대로 “참진주 명품음식 개발”이라는 프로젝트가 박 미영 씨를 기다리고 있다. 밤새 연구해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일반인들 및 결혼이민자를 위한 강좌, 그리고 저술준비… 끊임없는 R & D 덕분에 입속이 부르터 성할 날이 없다.

제철 재료, 천연 색소, 천연 양념, 자연적 맛의 배합

아무리 많은 양의 음식일지라도 쩝쩝대며 간 한 번 보는 일 없이 직관만으로 정확히 간을 맞춘다. 달인이다. 전통음식, 한국음식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남이 만들어놓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이다. 특히 일식이 지닌 자연주의는 박 미영 씨의 마인드와 잘 통한다.

하여, Food-city를 지향하는 진주시의 표제에 편승, 처음 개최한 제1회 전국주부요리경연대회에서도 내추럴리즘을 키워드로 삼았다. 제철 식재료와 천연색소, 천연양념을 사용하고 식재료 본연의 형태와 맛을 살리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대회 10분 전 비로소 공개된 블랙박스(박 미영 씨는 ‘오늘의 시제’가 담긴 박스를 이렇게 이름 지었다.)에는 육지의 쇠고기와 밭에서 나는 쇠고기 콩, 바다에서 나는 쇠고기 굴, 그렇게 3대 쇠고기가 들어있었다. 참가자 전원이 똑같은 재료를 이용해 실력을 겨뤘다.

주부요리경연대회는 늘상 정해진 시상내역, 불분명함 일색인 유사 행사에 경종을 울리고픈 그녀의 바람이었고 주부들에게 “건강지킴이”로써의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픈 동기부여도 되었다.

그날, 대회사를 통해 그녀는 전국의 주부들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감사와 정성의 천연양념을 아낌없이 흠뻑 쳐 음식다운 음식을 제대로 만들겠다”는 그녀를 향해서도 힘찬 파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글, 사진/김경은(문화칼럼니스트, 「명가집 내림손맛」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