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11월 “맛·멋·영양 갖춘 ‘궁중+양반 음식’… 한식 세계화 펼치고 싶다” -중앙일보-
‘진주 교방음식점’ 오정삼미 박미영 대표 ‘교방음식’이라 하면 생소할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접해본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음식은 조선시대 기생들의 가무와 술이 곁들여진 연회음식에서 비롯됐다. 맛·영양·멋을 고루 갖췄다고 한다. 이 음식의 전통을 잇는 이가 있다.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진주 교방음식점’ 오정삼미의 박미영 대표다.
글=조한대 기자 , 사진=장진영 기자
한 새댁이 주변에서 음식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김치 하나를 담궈도 “어찌 그리 맛깔스럽냐”며 묻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 새댁은 당찬 구석도 있었다. 안과를 운영하는 의사 남편을 돕기 위해 30대 초반엔 안경광학과에 입학할 정도였다. 남편은 레지던트 시절 회식 자리에 자주 가야 했다. 대부분 지도교수들과 함께 했다. 새댁은 다음날이면 해장국을 끓여 전날 밤 함께 술을 마신 지도교수 몫까지 만들어 줬다. 한 번 먹어본 교수들이 맛있다며 난리가 났다. 그 칭찬이 듣기 좋아 자꾸 요리를 했다.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요리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처녀시절 대학 임상병리학과에서 인체에 대해 공부했으니 이번엔 미생물학과에 입학해 음식의 효모, 발효에 대해 배워보고 싶었다. 30대 후반에 진주 경상대 미생물학과 문을 두드렸다. 2년여를 다니다 식품영양학과로 전과했다. 이 학과에서 석·박사까지 마쳤다. 만학도는 열정에 불타올랐다. 자신보다 스무 살쯤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진주 교방음식점 ‘오정삼미’ 박미영(49) 대표의 요리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박 대표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대학 강단에 섰다. 진주보건대 미스터피자과, 진주 한국국제대 외식조리학과, 경상대 식품영양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진주시 여성회관에도 나갔다. 이 시기에 한식·중식·일식·양식·복어조리기능사를 연달아 땄다. 학원 한 군데 다닌 적 없이 독학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2007년이었다. 당시 진주시장 아들 결혼식이었다. 시장 부인이 박 대표에게 결혼식 음식을 부탁했다. 음식 맛을 본 시장이 진주에서 음식 축제를 할 계획인데 행사 주관을 맡아 달라고 제안해 왔다. 축제 진행에 앞서 단체를 만들기로 했다. 2007년 (재)한국음식문화재단을 만들었고 박 대표가 이사장을 맡았다. 2008년, 2009년 ‘참진주 참음식 페스티발’을 열었다.
지난 9월 박 대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논현동에 진주 교방음식점 오정삼미를 차렸다.
-진주 교방음식이 뭔가.
“조선시대 진주엔 진주교방청이 있었다. 중앙에서 관리가 내려오면 이들을 접대하기 위해 연회가 열렸다. 진주 교방음식은 기생들의 가무와 술이 곁들어진 연회음식에서 비롯됐다. 궁중음식과 양반음식이 합쳐졌다고 볼 수도 있다. 진주에 내려온 관리들이 교방청 숙수(주방장)에게 궁중음식으로 이런 걸 먹었다고 말하면 여기에 창작성을 가미해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왜 교방음식을 택했나.
“궁중음식에선 왕에게 모든 영양소를 제공하려고 저장시설에 뒀던 재료를 쓰기도 한다. 이 재료는 고유 색깔을 잃고 영양분도 떨어진다. 고칼로리 음식도 많다. 사료를 찾아보면 고지혈증·당뇨병으로 임금이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지 않나. 반면 교방음식은 제철 재료를 쓴다. 영양분이 풍부한 식재료를 쓰지만 찜요리가 많아서 칼로리가 낮다. 찜은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 가오리 찜을 하면 수증기로 익히기 때문에 지방은 녹이고 맛은 유지할 수 있다. 여기에 숙수들의 창작성이 들어가다 보니 음식도 매우 화려하다. 맛, 영양, 멋을 모두 갖춘 음식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음식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오정삼미의 뜻이 뭔가.
“바를 정(正), 깨끗할 정(淨), 곧을 정(貞), 단정할 정(姃), 바로잡을 정(訂) 다섯 개 정과 맛 미(味), 아름다울 미(美), 빛날 미( ) 세 개 미를 뜻한다. 음식을 하는 내 신조다.”
-어떤 음식을 파나.
“먼저 3개 코스가 있다. 오정 코스는 15만원이고 삼미코스는 25만원, 교방코스는 40만원이다. 의외로 교방코스가 제일 잘 나간다. 이 코스엔 지리산 자연송이 황금구이, 흑돈 아스파라거스 레몬 말이, 닭가슴살 아보카도 도라지 말이, 인삼 샐러드 등 18가지 음식이 나온다. 코스 음식이 정해져 있진 않고 좋은 식재료가 들어오면 날에 따라 즉석에서 메뉴를 개발해 드리기도 한다. 코스 요리 외엔 칠보화반 비빔밥 정식을 5만5000원에 제공한다.”
-강남에 오정삼미를 차린 이유는.
“부유층이 많이 사는 곳이 강남이다. 부유층에게 먼저 고급화된 한식, 한국 정신이 깃든 한식을 알리고 싶었다. 일부 사람들은 근사한 서양식 레스토랑에서 소위 ‘칼질’을 해야 자신의 수준이 올라간다고 착각한다. 샐러드를 포함해 세 접시 정도만 나와도 비싸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반면 한식은 푸대접을 받아왔다. 어떤 음식보다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대표적인 슬로우 푸드고 발효음식이다. 이런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아도 비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 한식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품위 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생각한다.”
-인테리어·시설에도 신경 쓴 듯하다.
“실내에 있는 각 출입문은 이진호 자개 장인이 12번 옻칠한 문이다. 벽면엔 차인규 장인이 24k도금을 한 단조를 설치했다. 한 만찬실 벽면을 임금 어좌 뒤편에 있던 일월오봉도로 장식하기도 했다.”
-가격이 만만찮은데 장사는 잘 되나.
“아직 두 달여 밖에 안됐는데 오셨던 손님이 또 다른 손님을 소개해 줘 입소문이 났다. 인터넷 블로거들의 활동도 많다. 우리 가게 참숯 불고기 먹으면 다들 넘어간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모셨던 손성실 요리사께서 자주 오시는데 이렇게 맛있는 불고기는 처음 먹어봤다고 했다. 내 팬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미국에는 ‘CIA’가, 이탈리아에는 ‘알마’가, 프랑스에는 ‘르 꼬르동 블루’ 같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요리학교가 있지만 한국에만 이런 곳이 없다. 한식 전문 아카데미를 설립해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싶다. 한식 세계화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